증여와 상속 단순한 상속포기 결정 하나가 수억 원의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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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보다 손주가 더 예쁘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 세대를 건너뛰어 사랑하는 손주에게 바로 물려주고 싶어하는 조부모님들의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때 자녀들은 "우리는 괜찮으니, 아이들에게 바로 상속되게 하자"는 생각으로 선뜻 상속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 결정은 언뜻 보면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모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 숨겨진 세법의 함정을 모른다면, 0원이었을 세금이 수억 원의 '세금 폭탄'으로 돌아오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1. 흔한 오해 : " 공제 한도 내에서는 세금이 없다? "
상황을 단순하게 가정해 보겠습니다. 할아버지께서 10억 원의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셨고, 상속인으로 할머니와 아버지가 있습니다. 이 경우, 배우자 상속공제 5억 원과 최소 공제액인 일괄공제 5억 원을 합해 총 10억 원의 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 금액)은 '재산 10억 원 - 공제 10억 원 = 0원'이 되어 상속세는 한 푼도 내지 않게 됩니다.
사례 : 할아버지 재산 10억
일괄공제 : 5억
배우자상속공제 : 5억
과표 : 0원
세금 : 0원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지점에서 착각을 시작합니다. "어차피 세금이 0원이니, 할머니와 아버지가 상속을 포기하고 손주가 10억 원을 전부 받아도 똑같이 세금이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위험한 오해입니다.
2. 첫 번째 함정 : "상속 포기 순간, 10억 원 공제가 사라집니다"
이 오해가 치명적인 이유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4조' 때문입니다. 이 법 조항에는 '공제 적용의 한도'에 대한 무서운 규정이 숨어있습니다. 해당 법률은 '상속인이 아닌 자'에게는 상속공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선순위자의 포기로 인해 상속받는 다음 순위 상속인은 사실상 '상속인이 아닌 자'가 상속받는 것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공제 혜택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선순위 상속인(할머니, 아버지)이 상속을 포기함으로 인해 그 다음 순위 상속인(손주)이 상속을 받게 되면, 손주가 상속받은 재산 가액만큼 상속공제 한도에서 차감됩니다. 이 조항의 취지는 상속공제 혜택이 원래 상속받을 권리가 있던 선순위 상속인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명확히 하고, 상속 포기를 통한 조세 회피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즉, 손주가 10억 원을 상속받는 순간, 원래 받을 수 있었던 공제 10억 원이 그대로 사라져 버립니다. 그 결과, 0원이었던 과세표준은 순식간에 10억 원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이제 이 10억 원에 대해 세금을 계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3. 두 번째 함정 : "30% 세대생략 할증 과세"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세법에는 '세대생략 할증 과세'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세대를 건너뛴 상속에 대해서는 일종의 벌금 성격으로 세금을 더 매기는 것입니다.
자녀를 거치지 않고 손주에게 바로 재산이 이전되었으므로, 산출된 상속세에 30%의 세금이 추가로 할증됩니다. (참고로, 미성년자인 손주가 20억 원을 초과하는 재산을 상속받는 경우에는 할증률이 40%로 더 높아집니다.) 이것은 사라졌던 세금이 부활한 것도 모자라, 그 위에 더 큰 부담을 얹는 '엎친 데 덮친 격'의 상황입니다.
4. 정상적으로 상속 받았다면 0원이었을 세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세표준 10억 원에 대한 상속세율(30%)과 누진공제(6천만 원)를 적용하면 산출세액은 2억 4천만 원이 됩니다. 여기에 세대생략 할증 30%인 7,200만 원이 추가되어, 최종 납부할 세금은 총 3억 1,200만 원에 달합니다.
과세표준 : 10억원
세율 : 30%(누진공제 6천만 원)
산출세액 : 2.4억
할증과세 : 0.72억(2.4억 X 30%)
최종세액 : 3.12억
할머니와 아버지가 받았다면 세금 1도 안 낼 수 있었는데, 안 내도 될 세금을 3.12억 원이나 내게 된 셈입니다. 선의(?) 꼼수(?)로 시작한 상속 계획이 세법에 대한 무지로 인해 얼마나 큰 금전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상속과 증여는 단순히 재산을 나누는 행위가 아니라, 복잡한 세법이 얽혀있는 전문적인 영역입니다. 소중한 가족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판단이나 어설픈 지식에 의존하기보다, 반드시 사전에 세무 전문가와 충분히 상담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단순한 상속 포기 결정 하나가 수억 원의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